우통수와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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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통수의 위상

우통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충렬왕7년(1281) 일연에 의해 편찬된 사서인 삼국유사에 처음 나타난다. 권근의 오대산 '서대 수정암중창기에는 서대의 아래에 테두리를 두른 샘이 용출하는데 색과 맛이 보통 물보다 뛰어나고, 그 무게 역시 그러하다. 일컬어 우통수라 하는데 서쪽으로 수 백리를 흘러 한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한강이 여러 곳의 물을 받아들여 강을 이룬 것이나 우통수는 다른 물과 섞이지 않고 그 색과 맛이 변하지 않는다.' 하였다.

문화, 역사적 시원지로서의 우통수

택리지에서는 '한강지원우통지수(漢江之源 于筒之水 - 한강의 시원이 우통수의 물이다)' 하였으며,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오대산 서대의 아래에 샘이 용출하는 곳이 있으니, 곧 한강의 시원이라' 기록되어있다. 세종실록에 '우통수, 즉 금강연이 한수의 시원이 되니, 이로 인하여 봄과 가을에 관원에 명하여 제례케 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볼 때 한강의 시원이 되는 우통수(금강연)이 신성히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지도에 금강연이 표기된 지도는 11종, 우통수가 표기된 것은 5종, 우통수와 금강연이 동시에 표기된 것은 5종이 있다.